
약 25년간 제 직함은 ‘사람들을 울리는 남자’였습니다. 예, 저는 아이와 어른이 극장, 거실, 비행기 등 영화를 볼 수 있는 모든 곳에서 울게 만드는 일을 합니다. ‘토이 스토리’, ‘니모를 찾아서’, ‘라따뚜이’, ‘업’과 같은 픽사(Pixar) 영화를 보신 적이 있다면, 그런 스토리로 여러분을 울게 만든 사람들 중 한 명이 저입니다. 저는 사람들을 울게도 하지만, 웃고, 힘을 내고, 생각하고, 무엇보다 삶을 바꾸는 무엇인가를 경험하게도 합니다. 저는 스토리 작가입니다.
어떻게 이 일을 하게 되었을까요? 음, 모든 것은 장난감 가게에서 시작되었는데, 제가 태어났을 때 부모님은 샌프란시스코 베이 지역에서 장난감 업계 내에서 그 누구보다도 많은 장난감 가게들을 소유하고, 운영하고 계셨습니다.
가족이 운영하던 가게 이름은 제프리스 토이스(Jeffrey’s Toys)였습니다. 아이에게 나쁜 환경이 아니지요? 생일에 일어나면 부모님이 “아무 장난감이나 고르렴”하고 말한다고 상상해 보십시오. 유일한 단점이라면 누가 진정한 친구인지 알기 힘든 것이었습니다. 그저 제 스타워즈 장난감을 가지고 놀고 싶어 찾아오는 친구도 있었을 테니 말입니다.
장난감 가게는 부모님이 연 것이 아니었습니다. 부모님 전에 할아버지, 할머니께서, 그 전에는 증조 할아버지, 증조 할머니께서 장난감 가게들을 소유, 운영하셨으며, 고조부 할아버지 찰리는 장난감 가게와는 아무 상관이 없었습니다. 그는 사실상 장난감과 아이들을 싫어했고 샌프란시스코의 담배가게에서 불법 도박을 벌였지요.
고조부 할아버지를 제외하고 모든 가족이 어떤 식으로든 장난감 가게와 관련이 있었습니다. 왜일까요? 저희 가족은 항상 어린이와 어른이 놀고 상상하며 재미를 느끼고 싶게 만드는 장소를 만드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제 기억에 저희 가족은 사람들이 제프리스 토이스에 방문하는 것이 그들에게 있어서 특별한 경험이 될 수 있도록 만들어주고 싶어했습니다.
재미있는 사실은 아버지가 결코 이 장난감 가게를 소유하거나 운영하고 싶어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그는 장난감을 좋아했지만 어릴 때부터 다른 꿈이 있었습니다. 그는 애니메이터가 되어 월트 디즈니(Walt Disney) 밑에서 일하고 싶어했습니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다니는 내내 아버지는 교과서를 읽기보다 교과서 귀퉁이에 만화 캐릭터를 그리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심지어 해외에서 군복무 중에 수십 권의 스케치북을 채우며 베트남전 중에도 애니메이터가 되고자 하는 꿈을 계속 꾸었습니다. 고향으로 돌아온 그는 아버지, 그러니까 제2차 세계대전의 해군 참전용사이신 제 할아버지께 장난감 가게에서 일하고 싶지 않다고 선언했습니다. 그는 디즈니의 애니메이터가 되고 싶었습니다.
“아들아, 넌 애니메이터가 절대 될 수 없어.”라고 할아버지는 대답했습니다. “예술가는 생계를 꾸릴 수 없다. 그리고 네가 장난감 가게를 운영하는걸 도와야 해.” 해군 참전용사의 논리가 승리했고, 아버지는 꿈을 접어야 했습니다. 후에 아버지는 결혼하여 아들인 저를 낳았고, 역시 내내 장난감 가게에서 일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제가 4살 정도일 때 아버지가 심한 위통으로 장난감 가게에 나가지 않고 집에 계셨습니다. 저는 아버지가 힘내기를 바라는 마음에 4살짜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인 그림을 그렸습니다. 저는 위통을 앓고 있는 아버지를 스케치하고 배 부분에는 그가 느끼고 있으리라 상상되는 고통을 표현하기 위해 온갖 소용돌이와 구불구불한 선을 그려 넣고 상당히 닮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그림을 보신 아버지는 저를 가리키며 “너, 너는 선택 받았구나. 네가 내 꿈을 이루겠어. 네가 디즈니 애니메이터가 되겠구나.”라고 했습니다. 정확히 이렇게 말씀하신 것은 아니겠지만, 이것이 제 어린시절의 기억입니다.
그때부터 저는 아버지의 어린 견습생이 되었습니다. 아버지는 항상 저와 함께 앉아 그림을 그렸고 저를 데려가 많은 영화를 보여주었습니다. 매주 하루는 아침에 어머니가 초등학교에 데려다 주고 가시면 30분 정도 뒤에 아버지가 다시 데리러 왔습니다. 학교에는 제가 소아과나 치과에 가야 한다고 하셨겠지만, 사실은 영화를 보기 위해 학교를 빼먹는 것이었습니다. 농담이 아닙니다. 아버지가 대부분의 아이들이 아직 학교에 있는 낮에 신작 영화를 보러 가면, 신작이 개봉하면서 필연적으로 생기는 긴 대기 줄을 서서 기다릴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아버지는 정말 모든 아이들이 바라는 최고의 아버지였습니다.
처음에 보러 간 영화들은 전부 ‘정글북’, ‘로빈후드’, ‘마우스 킹’과 같은 애니메이션이었습니다. 애니메이션을 모두 본 다음에는 ‘스타워즈’, ‘영 프랑켄슈타인’, ‘거미들의 왕국’과 같은 실사 영화를 봤습니다. 아버지는 특히 공상과학 영화와 공포 영화를 좋아했습니다. 물론 9살 아이를 데리고 ‘폴터가이스트’를 보러 가는 것은 그리 좋은 생각이 아닙니다. 몇 개월간 악몽에 시달렸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아버지의 예술, 애니메이션, 영화에 대한 열정이 저에게 전해졌고, 고등학생이 되자 구식 슈퍼8(Super 8) 카메라로 영화와 애니메이션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아버지가 저에게 나눈 마법인 애니메이션 과정을 배우고 매우 원시적인 방법으로나마 영화를 만들고자 애쓰게 된 것은 정말 자연스러운 일이었습니다.
저는 고등학교를 다니며 애니메이션에 특화된 대학을 찾았고, 그 대학에 꼭 가고 싶었습니다. 대학 이름은 칼아츠(CalArts)였는데, 전설적인 월트 디즈니가 직접 구상하고 설립한 곳이었습니다. 이곳이야말로 애니메이션에 대해 배우기 안성맞춤인 곳이었습니다.
저는 입학허가를 받았고 칼아츠에 들어갔습니다. 그곳에서 교육 받는 매 순간이 좋았습니다. 픽사의 거의 모든 디렉터, 스토리보드 아티스트, 작가, 캐릭터 디자이너, 애니메이터가 칼아츠를 다녔습니다. 동문 중에는 ‘파워퍼프 걸’, ‘덱스터의 실험실’, ‘위 베어 베어스’ 등의 TV 애니메이션 제작자들, 유명 감독과 배우들도 많았습니다.
그러던 중, 제가 1학년 때 만든 애니메이션이 황금 시간대에 방영될 전혀 새로운 애니메이션 히트작 ‘심슨 가족’의 한 디렉터의 관심을 끌었습니다. 놀랍게도 저는 ‘심슨가족’의 애니메이터 자리를 제의 받았으나 공부를 먼저 마쳐야 한다며 제의를 거절...... 하지 않고 실제로는 당장 학교를 그만두고 19세의 최연소 애니메이터로 ‘심슨 가족’ 시즌3에 합류했습니다. 이제 애니메이터가 되고자 하는 아버지의 목표, 음, 제 목표를 어느 정도 이루었습니다. 하지만 이를 계기로 무엇인가가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어느 날 저는 우연히 ‘심슨 가족’의 작가실에 들어갔습니다. 당시 저는 방송작가들이 음울한 분위기로 혼자 컴컴한 사무실에서 키보드 앞에 앉아 대본을 써내는 사람들이라고 상상했는데, 실제 그곳에는 만화작가, 하버드 졸업생, 코미디언 등 다방면의 사람들이 모여 있었으며 모두 훌륭한 스토리 작가라는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심지어 코넌 오브라이언(Conan O’Brien)도 시간을 내어 ‘심슨 가족’의 작가로 참여했습니다. 저는 그들이 대본을 만들기 위해 브레인스토밍 하는 과정을 지켜보았습니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제가 하고 싶었던 일임을 즉시 깨달았습니다. 저는 다른 사람이 쓴 스토리를 애니메이션으로 만드는 것보다 스토리 자체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아버지의 열정은 애니메이션을 향했으나, 제가 가장 좋아하는 부분은 큰 그림을 그리는 것, 즉 스토리 그 자체와 캐릭터, 그리고 그 캐릭터가 겪을 모험을 만드는 일임을 깨달았습니다.
하지만 애니메이터에서 스토리 작가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또한 아버지를 실망시키고 아버지를 비롯한 가족 전체의 기대를 저버리고 싶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는 진심으로 마법 같은 스토리를 만드는 과정의 일원이 되고 싶었습니다.
‘심슨 가족’ 시즌 3을 마친 뒤, 저는 두 가지 결심을 했습니다. 첫째, 샌프란시스코 베이 지역 토박이로서 남은 일생을 LA에서 보내고 싶지 않았습니다. 둘째, 스토리 작가가 되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난데없이 샌프란시스코 베이 지역의 작은 스타트업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에서 일하지 않겠냐는 제의를 받았습니다. 이 스튜디오는 컴퓨터 제품의 단편 광고와 상업 광고 애니메이션을 만들었을 뿐 애니메이션 영화를 만든 경험이 없었고, 모든 “진짜” 애니메이션 일자리가 있는 LA와 떨어져 있다는 위험이 있었지만, 저는 해보기로 했습니다.
당시 이 스튜디오의 직원은 80명이었고, 최초로 CG 애니메이션 영화를 만들겠다는 꿈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자신들을 ‘픽사’라고 불렀습니다.
이곳은 전통적인 애니메이션 스튜디오가 아니었습니다. 감독인 존 라세터(John Lasseter)와 작가들은 동화 마을을 배경으로 공주나 왕자가 하나같이 “난 원해요” 식의 노래를 부르는 애니메이션 영화를 만들고 싶어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애니메이션 전체를 컴퓨터로 작업하고 단 한 컷도 손으로 그린 그림을 사용하지 않을 계획이었습니다. 이 영화는 전혀 새로운 애니메이션이 될 것을 약속했습니다. 그리고 스튜디오는 영화업계의 신참인 스티브 잡스(Steve Jobs) 소유였습니다.
픽사에 입사한1992년에 저는 픽사의 첫 애니메이션 영화 ‘토이 스토리’를 만드는 최초의 12명의 컴퓨터 애니메이터 중 한 명이었습니다. 애니메이션 업계의 거의 모든 사람들이 이 영화는 실패할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토이 스토리’에서 제 첫 임무는 양 발이 플라스틱 판에 붙은 작은 녹색 장난감 군인들의 움직임을 구현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 움직임을 정확하게 구현해내기 위해 제 신발을 나무판에 고정시킨 채 스튜디오 곳곳에서 걷고 뛰고 기고 책상에서 뛰어내리며 그 모습을 촬영했습니다. 저는 이 애니메이션을 가능한 정확하게 만들겠다고 결심했습니다.
하지만 제게 가장 흥미로운 부분, 정말 하고 싶은 일은 역시 스토리였습니다. 저는 캐릭터를 만들고 스토리보드를 그리며 스토리를 엮는 일을 돕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매일 애니메이터 일을 마친 뒤에 작가실을 돌아다니며 스토리보드를 정리하거나 색을 채우는 등 도울 일이 없는지 물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저는 제 작업을 마친 후 매일 저녁과 주말마다 스토리 팀을 도왔습니다. 스토리 팀으로 옮길 가능성이 눈앞으로 다가왔습니다.
‘토이 스토리’가 성공한 다음, 저는 ‘토이 스토리 2’의 스토리 팀 일원이 되었습니다. 당시에는 몰랐지만, 저는 이를 시작으로 20년간 픽사의 스토리 부문에서 일하며 10편의 애니메이션 영화, 5개 단편 애니메이션, 2개 TV 특집방송 등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모든 과정이 마치 친구들과 영화를 만들던 고등학교 때처럼 재미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와이어드(Wired) 잡지를 보던 중, 픽사가 영화 역사상 세계적으로 가장 사랑 받고 재정적으로 성공한 영화를 연이어 만들었다는 기사를 보았습니다. 예, 우리는 워너 브러더스, 유니버설 스튜디오, 파라마운트, MGM보다 더 인기 있는 영화를 잇따라 만든 것입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요? 여기에는 훌륭한 컴퓨터 애니메이션이나 캐릭터 디자인, 색채, 음악 이상의 것이 있었습니다. 바로 훌륭한 스토리텔링 입니다. 픽사에서는 스토리가 왕입니다. 저는 ‘토이 스토리 2’, ‘토이 스토리 3’, ‘몬스터 주식회사’, ‘니모를 찾아서’, ‘업’, ‘카’, ‘라따뚜이’, ‘몬스터 대학교’의 스토리를 만들고 다른 회사의 스토리 컨설턴트, 작가로 일하며 훌륭한 스토리는 뛰어난 소설과 연극, 영화, TV뿐만 아니라 성공적인 사업과 브랜드를 만든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극장에 앉아 있는 관객이든, 장난감 가게에 들어오는 손님이든, 온라인 구매 고객이든 관계 없이 그들을 사로잡거나 구매하도록 만드는 것은 결국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어 무언가를 느끼게 하는 스토리텔링입니다.
저는 여전히 대본을 쓰고 스토리 아이디어를 구상하는 것을 주 업으로 하지만, 영업, 마케팅, 강연 분야의 사람들과 훌륭한 스토리텔링의 원칙들을 공유하며 그들이 영감을 주는 스토리로 브랜드를 강화하고 진정한 유대를 형성하며 상대가 움직이도록 만드는 것을 돕는 일도 좋아합니다.
왜 스토리는 연령, 성별, 문화에 관계 없이 모두에게 그토록 효과적으로 반향을 일으키고 깊은 의미를 지닐까요? 왜냐하면 훌륭한 스토리는 잘 전달되었을 때 기억에 남고 영향력이 극대화되며 개개인에게 서로 다른 감상을 남기기 때문입니다.
스토리가 가미되지 않은 통계나 데이터, 정보를 공유하면 사람들은 10분 정도 흐른 뒤에는 해당 내용의5%밖에 기억하지 못합니다. 상당히 힘 빠지지요? 특히 하루 종일 숫자와 씨름하거나 데이터를 수집하고 배포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은 더욱 그러할 것입니다. 물론 빅 데이터가 모든 것을 바꾸고 있습니다만, 감정적 끌림이 있는 훌륭한 스토리가 없는 정보는 고객이나 직원이 다음 미팅까지 기억하지 못할 것입니다. 여기서 기억해야 하는 점은, 사람들에게 정보를 전달할 때 스토리나 사건을 입히면 사람들이 기억한다는 점입니다. 스토리가 가미될 때 사람들은 정보를 22배 더 많이 기억합니다.
보석회사 티파니(Tiffany & Company)가 어떻게 서사, 색채, 서체, 외형을 결합하여 기억에 남을 만한 스토리를 들려주는지 보십시오. 티파니의 트레이드마크인 청록색은 평온과 해방의 느낌을 만들고 서체와 로고는 고상하고 섬세한 느낌을 주며, 매장과 웹사이트, 광고에 이용되는 사진과 이미지는 사랑과 낭만을 전합니다. 이 모든 것이 어우러져, 한번도 매장에 가보지 않았더라도 모두가 잘 아는 기억에 남는 브랜드 스토리를 들려줍니다. 컨텐츠를 스토리 안에 넣으면 기억률이 5%에서 65%로 껑충 뜁니다. 그리고 기억만 더 잘하는 것이 아니라 더 연결된 느낌을 가집니다.
스토리는 기억에 남으며 영향력도 큽니다. 스토리는 우리를 롤러코스터에 태워 높은 순간(행복, 기대, 놀람)과 낮은 순간(슬픔, 두려움, 화)을 통과하며 실제 인체 호르몬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사람들이나 심지어 애니메이션의 장난감, 로봇, 쥐가 웃거나 미소 지으며 긴장감 있는 스토리를 나누는 것을 듣거나 볼 때, 우리 체내에는 도파민과 엔도르핀이 분비됩니다. 반대로 등장인물이 슬프거나 암울한 것을 듣거나 볼 때에는 옥시토신이 분비됩니다. 이렇게 슬픈 순간과 행복한 순간을 스토리 속에 연이어 배치하면 사람들의 머리와 마음 속에 놀이공원을 짓는 셈입니다. 상승과 하강, 긴장과 이완을 이용하면 청중을 꼭 붙들어 맬 스토리를 만들 수 있습니다.
영화 ‘업’의 도입부는 사람들이 웃고 울며 무언가를 느끼게 만드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첫 시퀀스에서 우리는 젊은 남녀가 사랑에 빠지고 결혼하고 집을 짓고 함께 일하고 자녀를 가질 꿈을 꾸는 것을 봅니다. 이렇게 행복하고 즐거운 순간은 기대감과 긴장감이 충만하여 우리 체내에 도파민과 엔도르핀을 다량 분비합니다. 그 다음에 부부가 병원에 가서 아내가 아이를 가질 수 없음이 밝혀집니다. 갑자기 우리의 행복 호르몬이 와르르 무너지고 옥시토신이 체내를 돌아다닙니다. 우리는 캐릭터에 공감하며 눈가가 촉촉해지고 코끝이 찡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 다음에 남편은 아내에게 모험 여행을 담을 일기장을 선물하며 기운을 돋우고 언젠가 남아메리카를 함께 여행하며 파라다이스 폭포에 갈 계획을 세웁니다. 이 장면을 볼 때 행복 호르몬은 다시 높아지며 우리는 미소 짓습니다. 하지만 다음 장면에서 부부가 함께 모험을 떠나기에 충분한 돈을 결코 모으지 못하는 것을 보며 행복 호르몬이 다시 뚝 떨어집니다. 세월이 흐르고 부부는 나이가 들어갑니다. 어느 날, 노인이 된 남편은 아내에게 했던 약속을 기억하고 자신의 회중시계를 팔아 파라다이스 폭포 행 비행기표 2장을 살 돈을 마련합니다. 우리는 다시 기분이 좋아집니다. 그들이 마침내 함께 여행을 떠나게 되었으니까요! 하지만 그가 미처 아내에게 비행기표를 주기 전에 아내가 쓰러져 병원에 실려가고 세상을 떠납니다. ‘아니, 뭐라고?!’하는 기분이 들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 시점이 되면 아무리 화장실이 가고 싶거나 무엇인가를 먹고 싶던 사람도 이 노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고 싶어서 자리를 뜰 수 없게 됩니다. 여러분도 고객에게 판매 홍보를 전하거나 회사 내에서 비전을 공유할 때 이렇게 자리를 뜰 수 없는 효과를 내고 싶지 않습니까?
뛰어난 리더와 강연자는 항상 이러한 긴장과 이완의 기법을 활용합니다. 이들은 일상 세계에서 청중을 태우고 가능성의 세계에 올라가 무엇이 될 수 있는지 보여준 다음 일상 세계로 다시 돌아와 서사적으로 끝을 맺으며 영업을 마무리하는 방법을 압니다.
스티브 잡스는 2007년, 샌프란시스코의 맥월드 엑스포(Macworld Expo)에서 아이폰을 처음 소개할 때 이러한 유형의 스토리텔링을 활용했습니다. 그는 “오늘은 제가 2년 반 동안 학수고대해온 날입니다.”라는 말로 프레젠테이션을 시작했습니다. 그의 흥분된 마음이 청중에게 전해졌습니다. “오늘, 애플(Apple) 사는 아이폰이라는 새로운 기기로 핸드폰을 재창조하려 합니다.” 청중은 매료되었고 행복 호르몬이 상승했으나, 그는 잠시 멈춘 뒤 지금까지 출시된 모든 스마트폰이 사실상 스마트하지 않고 멍청했다며 청중의 들뜬 마음을 가라앉혔습니다. 청중의 우울 호르몬이 분비되는 동안 잡스는 재빨리 방향을 바꾸어 “하지만 이 스마트폰은 컴퓨터만큼 똑똑합니다.”라고 발표했고, 모두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습니다. 그 다음에 잡스는 다시 청중의 마음을 가라앉혔습니다. “모든 스마트폰이 스타일러스 펜을 사용하기엔 지나치게 투박하다는 사실을 알고 계십니까?” 그리고 그는 청중을 다시 들뜨게 했습니다. “하지만 이 핸드폰은 완전한 터치스크린입니다. 아이폰은 손가락만 갖다 대면 모든 기능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이쯤 되자 청중은 거의 폭발적으로 열광했습니다. 기억에 남고 사람들을 움직이게 만드는 스토리를 하고 싶다면, 반드시 청중을 감정의 롤러코스터에 태워야 합니다.
어떤 신발을 신고 누구와 데이트하며 TV에서 어떤 프로그램을 볼 것인지 등 인생에서 내리는 모든 결정은 누구 혹은 무엇이 우리에게 어떤 느낌을 주었는지에 기초합니다. 크든 작든 모든 결정은 우뇌에서 내리는데, 우뇌는 감정에 의해 촉발됩니다.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영화를 볼 때, 책을 읽을 때, 사진에서 삶의 순간들을 볼 때 항상 그러합니다. 예를 들어, 이것은 제 차의 사진입니다. [시각자료] 지프(Jeep)이지요. 지프는 미국 내에서 전복사고가 가장 많이 발생하는 차인데 저는 아이가 셋입니다! 세 자녀를 둔 아버지가 몰기에는 그다지 실용적인 차가 아닙니다. 하지만 저는 이 차가 실용적이어서 산 것이 아닙니다. 이 차의 외관과 색상, 스토리가 모험과 재미를 원하는 제 욕구에 불을 붙였기 때문입니다. 예, 나중에 좌뇌에서 이 결정에 대해 좋은 선택이었는지를 이성적으로 판단하므로 상품이나 해법, 아이디어가 제대로 된 근본을 갖추는 것도 중요합니다. 강렬한 인상으로 기억에 남을 만한 스토리라면, 그 스토리를 풀어놓는 사람이 소설가이든, 영화배우이든, 회사 CEO이든, 누구인지에 관계 없이 스토리 작가와 청중 사이에 개인적인 유대감이 생깁니다. 영화 ‘포레스트 검프’에서 톰 행크스(Tom Hanks)가 버스정류장의 낯선 사람들에게 삶을 바꾼 이야기를 들려주든, 스티브 잡스가 직원들을 고무시키고자 애플 사의 스토리를 들려주든, 스토리텔링에는 개인간, 그리고 회사와 개인간의 유대를 형성시키는 힘이 있습니다. 직업적 혹은 개인적 삶에 스토리를 접목시키는 것이 사람들의 결정을 격려하는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회사 강령만 대뜸 세우지 말고 느낌을 만드십시오. 사람들이 여러분의 상품이나 서비스와 마주칠 때 어떤 느낌을 가졌으면 좋겠는지 정하고, 이를 대표할 만한 시각요소와 1~3개 단어로 이루어진 문구를 정하십시오. 티파니는 광고, 웹사이트, 포장, 매장에서 활용하는 색상과 서체 그리고 이미지를 통해 목표하고자 하는 바를 훌륭하게 전하고 있습니다. 이 요소들은 “고상함, 이탈, 사랑”이라는 느낌이 들도록 세심하게 선택된 것입니다. 바로 티파니가 여러분이 느꼈으면 하는 것들입니다. 이 회사는 서사적, 시각적 스토리텔링을 통해 여러분이 발견의 기쁨을 경험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뛰어난 회사들은 바로 이렇게 합니다. 테슬라(Tesla)는 화석연료를 사용하지 않는 외관이 멋진 차의 미래에 대해 낙관적인 느낌을 갖기를 바랍니다. 월트 디즈니 사는 모든 테마파크, 영화, 매장에서 즐거움과 오락을 경험하기를 바랍니다. 이는 단순히 회사 강령 이상의 느낌입니다. 하나의 선명한 느낌이 없다면 청중이나 고객에게 뒤섞인 메시지를 보내고 있는 것입니다. 또는 마냥 그들과 동화되기만 할 뿐입니다. 우리는 엔터테인먼트 산업과 비즈니스 업계에서 항상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을 목격합니다. 여러분은 청중이 무엇을 느꼈으면 좋겠습니까?
엔터테인먼트이든 비즈니스이든, 스토리텔링을 활용하여 사람들이 무엇인가를 느끼도록 하십시오. 왜냐하면 결국에 사람들은 이사회나 판매 홍보, 웹사이트, 사명 선언을 통해 여러분이 무엇을 말하는지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기분을 느끼게 했는지를 기억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매튜 룬(Matthew Luhn) 은 Pixar Animation Studios에서 20년 동안 이야기와 캐릭터를 만든 경력이 있는 스토리텔러이며 강사, 강연자, 스토리 컨설턴트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Pixar에서 <토이스토리(toy story=""> 시리즈, <몬스터 monsters="" inc="">, <니모를 finding="" nemo=""> 등의 이야기를 만든 그는 할리우드에서의 작업뿐만 아니라 포춘지가 선정한 500대 기업과 기업가, 전문가들과 함께 협업하여 비즈니스와 마음을 연결하는 이야기로 브랜드와 비즈니스 커뮤니케이션을 더욱 강화하기도 했습니다.니모를>몬스터>토이스토리(toy>